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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간송도 통곡할 '그을린 훈민정음'

“세종이 화장실 창살을 보고 우연히 한글을 창제했대.”

 

일제 강점기의 어용학자들이 퍼뜨린 한글폄훼론이다. 세종이 한글창제의 원리를 설명한 해례본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갖가지 억측이 무성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들은 훈민정음의 원본인 해례본을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을 찾았다.

 

그러나 일제는 18세기 위작이라며 깔아뭉갰다. 해례본을 찾지 못한다면 한글은 그저 ‘세종이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우연히 만든 글자’로 전락할 수 있었다.

1940년 간송 전형필은 국문학자인 김태준으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세종이 여진 토벌에 공을 세운 제자(이용준)의 조상에게 훈민정음 해례본을 하사했다”는 소식이었다.

 

배씨가 공개한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 밑부분이 화재로 그을려 있다.

간송은 물건값 1만원에 별도의 사례비 1000원까지 얹어 주었다. 최고급 기와집 10채 값이었다. “마땅히 보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 꼽혔다. 간송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품에 고이 간직한채 피난을 떠났고, 잠 잘 때도 베개 속에 넣어 끝끝내 지켜냈다.

 

1956년 후학들의 연구를 위해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어 영인본으로 공개했다.

2008년 경북 상주에서 간송본과 동일 판본으로 추정되는 해례본(상주본)이 발견됐다.

 

간송본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고, 표제와 주석이 16세기에 새롭게 더해졌다. 학술가치가 엄청났다. 그러나 간송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처음 공개한 배모씨와 원 소장자인 조모씨의 소유권 분쟁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조씨의 소유권을 인정했고, 조씨는 상주본을 국가(문화재청)에 기증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배씨는 상주본의 행방을 감춘채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2015년엔 화재가 났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잿더미가 된 것이 아닐까 걱정됐다.

 

배씨는 최근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1조원으로 신고하려 했다. 1조원의 재산을 입증하겠다는 그는 꽁꽁 숨겨놓았던 상주본 사진을 공개했다.

 

아래쪽이 불에 그을린 모습이다. 문화재청은 “그나마 무사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법적인 절차에 나설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어찌됐는지 심히 걱정된다.

 

간송본을 지킨 전형필 선생이 통곡할 일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