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잊지말고 앞날의 가르침으로 삼자.(前事不忘 后事之師)”(<전국책> ‘조책’)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3월 독일 베를린 강연에서 일본의 난징 대학살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의 고서성어를 인용했다. 지난해 9월 미-중 전략경제대회에서는 “자기가 원치 않은 일은 남에게 시켜서는 안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논어>
‘안연’을 떠올렸다.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상대방을 인정하라고 미국 측에 주문한 것이다. 시진핑의 ‘고전 인용’은 정평이 나있다. 그 가운데 즐겨 인용하는 것이 <논어> <예기> <맹자> <순자>와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라고 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는 ‘천리 멀리 한껏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을 오른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는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등관작루(登관雀樓)’를 인용했다.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시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조선조 허균(1569~1618)의 시까지 깜짝 인용했다.
“속마음을 매번 밝게 비추고(肝膽每相照),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시린 달이 내려 비추네(氷壺映寒月).”
예로부터 양국은 허균의 시처럼 ‘속마음까지 터놓는 사이(肝膽相照)’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탓일까.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는 각국 지도자들마다 중국의 고전 한 두 편 쯤은 외우는 게 관례처럼 됐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미국과 중국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맹자> ‘진심(盡心)’을 인용해 “산에 난 길도 사람이 이용하지 않으면 곧 풀로 덮여 사라진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고 했단다.
이렇듯 알쏭달쏭한 은유로 상대방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는 한자의 특징이 외교무대에서 마음껏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고전은 그 자체가 훌륭한 외교적인 수사인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각계인사 3000명 앞에서 특유의 고사성어 외교를 펼치면서 알듯 모를 듯한 침을 살짝 놨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논어> ‘이인’)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덕으로 원한을 갚았다’는 뜻의 ‘이덕보원(以德報怨)’(<논어> ‘헌문)의 구절까지 인용했다. 모두 일본을 염두에 둔 한 말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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