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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쓰러진 자격루의 교훈

 주나라 시대에 계인(鷄人)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닭을 관장하면서 새벽을 알리는 관리였다.(<주례> 춘관) 이렇듯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때를 알려주는(欽若昊天 敬授人時)’(<서경>) 직책은 매우 중요했다. 만약 농사철 때 ‘때(인시·人時)’를 잘못 일러주면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여기는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세종 임금이 자격루의 제작을 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세종실록>)   

지난 2007년 각계 전문가 30여명이 모여 23년만에 겨우 복원한 자격루.  

“시각을 잘못 알리면 중벌을 받았다. 장영실에게 명해 시각을 알릴 목각인형을 만들었다.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세종실록>)
 장영실의 자격루(自擊漏)는 물시계와 자동시보장치를 겸비한 조선의 표준시계다. 물시계(아날로그)의 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를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디지털 시계가 이미 581년 전에 제작된 것이다. 하늘을 존중하는 마음씨로, 백성의 노고 없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시계를 기어코 만든 것이다. 대단한 세종의 경천애민 정신이다.
 장영실의 신분은 노비였다. 아비는 원나라 소·항주 출신의 귀화인이었지만 어미 신분(기생)을 좇아 천민(노비)이 됐다. 세종은 스스로의 표현처럼 ‘솜씨는 물론 성질 또한 빼어난’ 장영실을 과감하게 발탁한 것이다. 세종은 “원나라 때도 절로 작동하는 물시계가 있었지만 정교함에서는 장영실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칭찬했다. 당대 사람들 역시 “장영실은 세종대왕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필원잡기>)
 자격루의 정교함은 6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다. 내로라하는 과학자 30여 명과 최첨단 장비까지 총동원되고도 23년 만에 겨우 복원됐다.(2007년) 쇠구슬의 크기가 1㎜만 달라도 제대로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다니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지난 12일 대구 세계물포럼 개막식 행사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자격루 모형이 넘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니 그 민망함이란…. 그저 해프닝이었으리라. 다만 세종 임금이 자격루를 만들 때의 마음씨를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