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가 매일 아침 먹이를 주는 주인을 기다리게 됐다.
‘이 시간만 되면 곧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하고 귀납적 추리의 결론을 낸 것이다.
칠면조는 어느 날 아침 9시가 되자 주인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인은 애타게 기다리던 칠면조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추수감사절의 전날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일반화의 오류를 표현하면서 예를 든 ‘러셀의 칠면조’이다.
1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무사했으니 오늘도 괜찮겠지 하는 귀납 추론이 세월호 침몰이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사고를 낳는 것이다.
러셀은 거창한 철학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칠면조를 예로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새의 박복한 운명을 웅변했다고 할 수 있다.
칠면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야생으로 수천마리씩 떼지어 살고 있었다. 그러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영국 청교도 102명의 눈에 띈 것이 비극을 낳았다.
이주민들은 신천지의 익숙치 않은 풍토 탓에 배를 곯았다. 그래도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은 그냥 넘길 수 없어 칠면조를 잡았다. 그때부터 사육되기 시작한 칠면조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에만 5000만 마리 정도가 희생된다.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1958년 추수감사절 때 친정에 와서 30파운드(13.6㎏)의 칠면조 요리를 먹었다는 소식이 보도될 정도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른 새의 물고기를 빼앗아 먹는 대머리 독수리보다는 ‘용감한’ 칠면조를 국가의 상징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틀리면 꼬리 털을 부채 모양으로 활짝 펴서 다른 새들을 겁박하기 일쑤인 칠면조의 포악한 성격을 프랭클린은 몰랐을까. 1947년부터 대통령 진상품으로 바친 ‘칠면조’에게 사면령을 내리는 이벤트가 시작됐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추수감사절 전날인 그제 백악관에서 에이브(The Abe)와 어니스트(Honest)로 명명된 칠면조 두 마리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두 마리는 ‘처형’을 면했다.
그러나 원래 식용으로 사육된 탓에 ‘과비만’ 때문에 그냥 둬도 오래 살지 못한다.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식의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해프닝도 있었다.
어떤 중국 매체가 칠면조 ‘Abe(링컨 대통령의 애칭)’에게 내린 사면령을 ‘아베(Abe)’로 잘못 번역해 기사화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때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총리를 칠면조로 비유해서 사면을 내렸다고 환호하기도 했다. 혹시 실수롤 빙자한 중국인들의 희망사항이 표출된 것일까. 경향신문 논설위원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미술관장 마리, 과연 무엇을 검열했나 (0) | 2015.12.04 |
---|---|
창비 정신과 백낙청 (0) | 2015.11.29 |
대도무문의 참뜻 (0) | 2015.11.24 |
'책벌레' 나폴레옹과 독서전쟁 (0) | 2015.11.16 |
3개의 허파를 가진 사나이 (0) | 2015.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