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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책벌레' 나폴레옹과 독서전쟁

나폴레옹은 전쟁터에 나설 때 대포와 함께 ‘책마차’를 끌었다.

이집트 원정 때는 책 1000권과 수백명의 사서, 그리고 고고학자들까지 망라한 원정대를 꾸렸다. 나폴레옹의 사서(司書)는 신간을 늘 준비하고 있다가 명을 받으면 곧바로 대령했다. 외딴 섬인 세인트헬레나 유배 당시 나폴레옹의 재산목록에는 8000여 권의 장서가 들어있었다. 죽은 뒤 유배지 서재엔 2700권이 꽂혀있었다.

나폴레옹 뿐 아니라 그 휘하 병사들의 배낭 속에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와 같은 책이 들어있었다. 그 때문인지 철학자 헤겔은 독일을 침공한 나폴레옹을 바라보며 ‘저기 백마 탄 세계정신이 지나가고 있다’고 감탄했다.
나폴레옹과 같은 독서광들은 책벌레(종이벌레·두魚子)니,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看書癡)니, 책을 지나치게 탐한다는 서음(書淫)이니 하는 수식어를 무척 좋아한다.

조선의 풍운아 허균은 ‘평생 서음으로 이름났으니~이 책에 의지해 문을 걸고 늙어가겠다’(<한정록>)고 은근 자랑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식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이놈의 문자벽을(兒時文字癖) 늙었는 데도 아직 잊지 못한다(歲晩未能忘)’(<택당집>)고 했다.

다산 정약용 역시 ‘촌에 처박힌 늙은이(정약용)는 뜻이 있다면 서책만을 치우치게 좋아한다(有志簡編지是癖)’(<다산시문집>)고 했다.

토정 이지함은 병중에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은 성혼에게 “공의 독서벽은 마치 여색(女色)을 탐하는 성벽(性癖)과 같다”고 했다. 몸조리에 힘쓰라는 충고였을테지만 성혼에게는 극찬으로 들렸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선현들은 왜 책을 이다지도 좋아했을까. 프랑스의 문인 뒤퐁의 말처럼 ‘글이 곧 사람’이며,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기 때문이다.

송나라 시인 황산곡은 “선비가 사흘간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이 무미건조해지고 거울을 볼 때 그 얼굴이 스스로 부끄럽다”고 했다.
21일로 도서정가제 시행 1주년을 맞았지만 출판시장의 불황은 여전하다. 중소서점의 매출이 약간 올랐지만 전체 도서판매량이 감소세라는 것이다. 도대체가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백약이 무효가 아닌가 싶다. 새삼 윈스턴 처칠의 말을 떠올려본다.
“서가의 책 한 권을 닥치는대로 펴서 눈에 띄는 문장부터 그냥 읽어라. 설령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책이 서가 어디에 꽂혀있는지 기억해두라. 책은 당신의 친구가 될 것이다.”
처칠은 ‘어떤 책이든 사서 서가에 꽂아두는 것만이라도 훌륭한 독서’라 한 것이다. 어떤가. 가까운 동네 서점에 가서 서가에 꽂아둘 책을 살 마음이 굴뚝같지 않은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인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헸다.
“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다.”
천국에 가면 적어도 책 읽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마음이 굴뚝같지 않은가.

 <참고자료>

 김삼웅,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시대의 창, 2008

 강명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정문택^최복현, <도서관에서 찾은 책벌레들>, 휴먼드림, 2009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