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30분 뉴질랜드 출신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함께 발을 내디뎠다.
첫 발의 주인공이 누구냐를 두고 참새들의 입방아가 계속됐다. 30분 전에 도착한 텐징이 숨을 헐떡이며 따라온 힐러리에게 양보했다느니, 힐러리가 ‘당신네 땅이니 당신(텐징)이 먼저 밟으라’고 했다느니 쉼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15분 간 정상에 머물며 찍은 사진에 텐징만 등장한다는게 흥미롭다. 힐러리만 카메라 작동법을 알았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두 사람은 ‘그런 쓸데없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둘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상에 함께 오른 마당에 이 무슨 부질없는 논쟁인가. 아무튼 등반전문가인 셰르파(텐징)가 힐러리보다는 먼저 정상의 턱 밑에 도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에베레스트 등정 역사 중 최다등반 기록도 17차례나 정상에 오른 셰르파 아파가 보유하고 있다.
최장시간 정상체류(21시간·1999년)와 최단시간 등정기록(16시간 56분·2000년) 역시 셰르파 바부치리가 갖고 있다.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셰르)에서 온 사람(파)’을 가리킨다. 500여 년 전 동부 티베트에서 벌어진 전쟁을 피해 네팔 산악지대로 이주한 피란민의 후손이었다.
1920년대 등반을 스포츠로 여겨 정상정복에 나섰던 영국인들의 짐과 막일을 맡으면서 ‘셰르파의 명성’을 얻었다. 처음엔 그저 가난 탈출용 호구지책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세르파도 정상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 텐징 덕분에 셰르파의 위상이 하늘을 찔렀다. 힐러리는 “텐징은 다른 영국인들에게 등정의 첫번째 기회를 빼앗기자 안절부절 못했다”고 회고했다.
최근 영국 사우스햄턴 대학병원의 ‘익스트림 에베레스트 연구팀’은 “셰르파들은 연비 좋은 차량처럼 적은 산소에도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체질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고산지대에서도 모세혈관의 혈액순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셰르파들은 2~3개의 폐를 갖고 있다’는 텐징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덧붙이자면 셰르파의 말에는 ‘정상’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그러니 ‘정상 정복’은 건방진 말이다. 이런 겸손한 마음씨가 셰르파들에게 초인적인 진화를 안겨준 것이 아닐까 싶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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