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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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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주사. 더덕정승, 잡채 판서, 참기름 연구원 조선조 중종 때 이팽수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가장주서(家獐注書)’였다. 가장은 개고기를, 주서는 정7품의 벼슬이었다. ‘개고기 주사’라. 왜 그런 부끄러운 별명이 붙었을까. 1534년(중종 29년) 중종이 그를 승정원 주서로 임명하자 실록을 쓴 사관이 이런 논평을 했다. ■개고기 주사 “이팽수는 승정원 내부의 천거도 없었는데 김안로가 마음대로 천거했다. 김안로는 개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이팽수가 봉상시 참봉으로 있을 때부터, 크고 살찐 개를 골라 사다가 먹여 늘 김안로의 구미를 맞추었다. 김안로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어느 날 이팽수가 청요직에 오르자 올랐다. 사람들은 이팽수를 ‘가장주서’라 했다.” 그러니까 봉상시 참봉(지금의 9급)이던 이팽수가 당대의 권신 김안로(金安老·1481~15..
'시크'는 80년 전의 신어였다 ‘시크(chic)하다’는 표현이 있다. 국립국어원이 2004년 펴낸 자료집은 ‘멋있고 세련되다’는 뜻의 신어(新語)라 소개했다. 그러고보니 ‘젠틀하다’ ‘스마트하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시크하다’는 그리 오래 전의 표현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틀렸다. ‘시크하다’는 자그만치 84년 전에 등장한 신어였으니까…. “‘쉬-크’라는 신어는 멋쟁이 하이칼라다. 외형만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빈틈없는 근대인이다. 내면이 빈약한 모던보이, 모던걸에 반해 쉬크보이, 쉬크걸은 훌륭한 신사숙녀이다.”(동아일보 1931년 4월13일) 사실 신어는 단순히 새롭게 생긴 말이나 뜻이 아니다. 당시 신문은 영화배우인 해리 크로스비의 언급을 인용, “신어는 낡은 어휘에서 도망나온 배암(뱀)이며, 거인(사전)의 어깨 위에 앉아..
'임금 아닌 임금'-덕종 스토리 최근 오랜만에 낭보가 들렸다. 문화재청이 미국 시애틀박물관이 소장중이던 ‘덕종어보’를 기증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덕종어보는 종묘 영녕전 덕종실에 있다가 1943년 이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해외로 유출됐다. 그러다 1962년 문화재 애호가인 토마스 스팀슨이 구매해서 시애틀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그런 덕종어보가 53년 만에 귀향한 셈이다. 이번 기증식에는 고인이 된 토마스 스팀슨의 외손자인 프랭크 베일리가 참석했단다. 그런데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덕종은 과연 누구인가. 추존왕인 덕종과 그의 부인 소혜왕후의 능인 경릉. 덕종은 성종의 친아버지이며, 20살에 요절했다. 성종은 아버지를 추존왕으로 모셨다. ■최초의 추존왕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줄기차게 외었을 ‘태정태세 문단..
서울은 '정도 2000년'이다. 600년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백제는 기원전 18~기원후 660년까지 678년을 이어온 고대국가였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백제는 아무래도 웅진(475~538)~사비 시기(538~660)의 백제일 것이다. 물론 이 185년의 백제 역사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백제가 또 있다. 기원전 18~기원후 475년 사이에 한성을 도읍으로 삼은 백제이다. 놀라지마라. 이 한성백제는 전체 678년의 백제역사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되는 49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31명의 백제 임금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21명이 한성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풍납토성 복원도. 온조왕이 처음 쌓을 때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궁실을 짓는다는 것이..
여왕이여! 신라여! 망하리라! “이름없는 자가 당대의 정치를 비방하는 글을 지어 조정의 길목에 내걸었다.” 888년(진성여왕 2년)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에서 당시의 정치를 비난하는 벽보(榜·대자보)가 붙었다. 그것도 조정의 길목, 번화가에 붙은 비방문이었다. 그런데 는 “나라 사람들이 비방문을 길 위에 던졌다(書投路上)”고 했다. 는 “벽보(혹은 대자보)를 붙였다”고 했지만, 는 “전단을 뿌렸다”고 한 것이다. 어찌됐든 글 내용은 알쏭달송했다. 다라니(밀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려는 주문 같은 것)의 은어로 쓰여 있었다. “나무망국찰니나제(南無亡國刹尼那帝) 판니판니소판니(判尼判尼蘇判尼) 우우삼아간(于于三阿干) 부윤사바아(鳧伊娑婆訶)”( ‘기이편·진성여왕 거타지조’) 진성여왕(재위 887∼897년)은 “당장 비방문을 써서 내..
'올빼미'가 균형 감각의 상징이다? 올빼미란 새가 있다. 너무 귀해서 천연기념물(제324-1호)로 대접받고 있는 야행성 맹금류다. 그렇지만 고금을 통틀어 올빼미는 ‘불인(不仁)과 악인(惡人)’의 상징으로 치부돼왔다. 예로부터 어미를 잡아먹는 흉악한 새로 악명을 떨쳤다. 그 연원은 3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기원전 1043년 무렵, 주나라 창업공신인 주공(周公)은 어린 조카인 성왕을 도와 섭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공의 형제들인 관숙과 채숙이 가만있지 않았다. 주공의 독주를 질시한 것이다. 그들은 “삼촌(주공)이 조카(성왕)의 나라를 집어 삼킬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어린 성왕도 유언비어를 믿었다. 그러자 주공은 성왕에게 왕실의 위기를 경고하는 시를 전했다. “올빼미야! 올빼미야! 이미 내 자식을 잡아먹었으니 내 집까지 헐지마..
'탕탕평평 평평탕탕' ‘홍재(弘齋)’ ‘탕탕평평평평탕탕(蕩蕩平平平平蕩蕩)’ ‘만기(萬機)’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가 자신의 저작물에 찍은 장서인(인장) 71종을 분석한 논문을 보라.(김영진·박철상·백승호의 ‘정조의 장서인’, 45집,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백성을 대하는 임금의 자세가 절절이 묻어난다. 정조가 즐겨 사용한 장서인 가운데 '만기' 인장이 눈에 띈다. 정조의 만기친람은 유명했다. 심지어 "'깨알지시'를 내리지 말아달라" "건강 좀 챙기라"는 대신들의 부르짖음에 정조는 "보고서 보는게 취미인데 어떡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김영진 외의 '정조의 장서인', 45집에서 ■침실 이름이 '탕탕평평실' 우선 ‘홍재’는 “뜻을 크게(弘) 가져라”는 증자의 가르침을 새긴 것이다. "증자..
'공자왈' 판결의 두 얼굴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얼마 전 서울고법 형사 6부 김상환 부장판사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매우 흥미로운 판결문을 썼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유명한 ‘자왈(子曰·공자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즉 ‘위정’에 나오는 ‘공호이단 사해야이’, 즉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김 판사는 이어 “이단(異端)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라고 했다. 세상을 등진채 밭을 갈고 있는 은자에게 길을 묻는 공자와 제자들을 그린 그림. 공자는 끊임없이 세상에서 쓰임받기를 원했다. 도가는 그런 공자에게 세상의 미련을 끊으리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