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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동물의 왕국'과 '인간의 왕국'

 속된 말로 ‘꼰대’냐 아니냐를 가르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리모콘을 돌리다가 어느새 ‘동물의 왕국’이나 ‘가요무대’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하면 당신은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재미있는 건 ‘그 연세 또래’가 되면 이념이나 정치적인 견해 차이에 관계없이 이들 프로그램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물의 왕국’의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생전의 김 전대통령 소파엔 6·15남북정상회담 공동성명 합의문 및 노벨평화상 인증서와 함께 ‘동물의 왕국’ 비디오 테이프가 비치돼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물의 왕국'을 즐겨 시청했다.

방영시간에 맞춰 회의를 일찍 끝난 적도 있었다 하니 얼마나 광팬이었는지 알 수 있다. 2010년 타계한 고 리영희 교수는 평소 방송을 즐겨 보지 않았지만 ‘동물의 왕국’ 만큼은 병상에서도 꼬박꼬박 챙겨봤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애청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청자가 된 이유도 제각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저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 했고, 리영희 교수는 ‘인간이 나오는 이야기는 싫고 동물은 괜찮다’는 농담을 실어 말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도 나름의 규칙대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에 매력을 느낀 것이리라. 사실 ‘동물의 왕국’에서 동물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에 각인된다.

   예컨대 가족들을 돌볼 수 없게 된 늙은 수사자가 젊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에서 세상사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무자비한 사냥이 잔인하다지만 그 역시 먹이사슬을 통한 생태계의 균형잡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적자생존·약육강식의 법칙도 있다지만 악어·악어새와 같은 공생의 원리도 배울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대표의 저서에 박근혜 대통령 역시 ‘동물의 왕국’ 팬이었음을 알리는 인터뷰가 실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1994년 당시 MBC 기자였던 박영선 전 대표에게 ‘동물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는 속담도 있으니 그런 생각을 품을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생각이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배신과 소신은 엄연히 구분돼야 할 것 같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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